“너’와 ‘나’를 연결한 ‘여성’이라는 그 길을,
우리는 이제 걸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질퍽이는 길의 굽이굽이를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묻고자 합니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은 있는가.
더는 ‘공연의 꽃’이 아닌
‘공연을 지탱하는 나무’로 불리기를 원하며,
원초적 야성을 갑옷처럼 장착한 여성 예술가들이
달려가야 할 너른 벌판은 어디인가.”


- 기획노트 중에서 -

[우리는 그동안 여성이자 예술가, 서로에게는 낯선 섬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여성이자 예술가, 그리고 서로에게는 낯선 섬이었습니다. 우리가 속한 예술 생태계의 ‘남동생 업어 키우기 문화’ 속에서 ‘여성 예술인으로의 나‘는 늘 뒤로 밀리고, 우리의 신체주권은 헛헛하게 나뒹굴며 세찬 물살에 삼켜져 왔습니다. 작아짐을 강요하는 침묵의 바다에 둘러싸여 동료를 보면서도 홀로인 듯 외로웠던 우리는, 그저 서로에게 낯선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강요된 침묵의 바다에 언젠가부터 파동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무섭도록 새카맣게 어두워 소용돌이로 떨어져도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던 억겁의 물결은 출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외롭게 떨어진 섬들 같던 너와 나를 저 밑바닥 어딘가부터 연결하던 대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너’와 ‘나’를 연결한 ‘여성’이라는 그 길을, 우리는 이제 걸어보려 합니다. 그리고 축축한 물기를 머금고 질퍽이는 길의 굽이굽이를 조심스럽게 내딛으며, 묻고자 합니다.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은 있는가. 더는 ‘공연의 꽃’이 아닌 ‘공연을 지탱하는 나무’로 불리기를 원하며, 원초적 야성을 갑옷처럼 장착한 여성 예술가들이 달려가야 할 너른 벌판은 어디인가.

 
문화예술계의 거스를 수 없는 미투의 물결 속에서 활발하게 여성주의를 탐구해온 여성 예술가들과 함께, 움직임으로 여성들의 신체주권을 되돌아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여성 예술인들이 회복해야 할 너른 대지의 의미를 되새기며 < 아직 가닿지 못한 그 곳, 찬란한 벌판 >을 무대 위에서 꿈꿔보고자 합니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춤추고 기뻐하며, 눈물이 마를 때까지 웃고 울며 달리고 싶습니다.

그러다가 함께 벅찬 숨을 내쉬며 나뒹굴고 싶은 당신과 나의 그곳, 아직 가닿지 못한 ‘찬란한 벌판‘입니다. 

< 단단한 고요 >  

< 전사의 땅 >

단단한 고요

해갈되지 않는 가사노동의 무게감 속에서
단단하게 형성된 일상의 고요가 있다.
여성의 가사노동에 관하여,

어쩌면 새롭게 써야 할 여성서사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장 르

현대무용 

런 타 임

15 min

관 람 등 급

만 12세 이상 관람가

안 무 |  출 연

서경선

서경선 | 안무가

 

서경선은 꾸준히 ‘집시리즈’에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여성과 나이 듦,
그리고 자연과 연관된 작업을 계획하고 무엇보다 1인 체제로 작업하는 게 즐겁다.
< 식물성 소품집 >, < 단단한 고요 >, < 사라지지 않을 > 등을 안무했다.


“고요하고도 신기한 마술이 이 작품 안에 있다”
 -춤웹진 2021.5. Vol.141



Epilogue 

극장 답사 때 무대에 덩그마니 서 있으면서 생각했다. 
‘내 작품이 너무 시시하면 어쩌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가사노동을 다루는 작품이 너무 시시한지를 계속 고민하게 된다. 작년에 이 작품을 만들면서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작품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으면서도 말이다. 집안일은 으레 그렇듯 여성의 노동이고 그림자 노동이다. 이 노동에 헌신이라는 껍데기를 벗겨내면 무엇이 남을까?
 
‘혁명의 영점’이라는 책이 있다. 작가는 실비아 페데리치로 가사노동과 재생산 그리고 여성투쟁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을 4년 전 즈음에 읽으면서 내 인생이 크게 바뀔 거라 예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자본주의가 미세하게 가사노동을 보이지 않게 만들었음을 피력하기에 내 역량은 부족하다. 하지만 바가지를 긁는 사람, 또는 헌신하는 엄마 같은 이미지에서 무임금상태의 엄청난 노동자였다는 사실은 드러내고 싶었다. 내 엄마가 그리고 내 엄마의 엄마가 그렇게 살았다고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그들의 삶에, 그들의 인생에 엄마라는 정체성 외에 다른 삶이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 단단한 고요 >는 하찮고 지금 가장 중요한 이슈가 아니어서 묵혀있던 가장 힘없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들춰보려는 마음가짐으로 만든 작품이다. 좋은 것만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는 좋게 만들어가는 역할을 나눌 시기인가보다.

전사의 땅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문화예술계 미투,
n번방 사건과 구하라, 설리의 자살이 드러내는
‘대한민국 여성혐오’에 관한 움직임 보고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여성혐오의 민낯을 마주한 오늘,
여성 무용인들의 선언적 움직임을 통해
대한민국 여성 시민들이 반드시 회복해야할
신체주권을 무대 위에서 선언한다.

장 르

현대무용 

런 타 임

45 min

관 람 등 급

만 12세 이상 관람가

안 무 

천 샘 

 천 샘 | 안무가
 감성스터디 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대표

천샘은 ‘예술가 시민’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를 본인의 정체성으로 삼고자 한다. 시민들 위에 선 예술가가 아닌, 시민의식을 날카롭게 장착한 예술가로서의 역할이 변화하는 시대에 요구되는 예술의 역할이라 믿기 때문이다. ‘춤은 우리 사회에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안고 작업하고 있다.


“한 명의 피해자를 위한 공연, 객석에서 울음이 쏟아졌다”
오마이뉴스 2020.9.9.


‘구구’의 이야기: 그대는 나의 찬란한 황조롱이!   written by  천샘

저는 공원이 보이는 아파트에 삽니다. 그래서인지 봄의 한 철이 되면 아파트의 실외기로 새들이 날아와 둥지를 틉니다. 관리실에서는 방송을 하죠. 새가 날아와 똥을 싸고 가면 실외기가 망가질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어떤 집에서는 새들이 앉지 못하도록 그물망을 쳐놓기도 한다는데요. 저희 집에는 아이가 있어 새들이 날아오면 아침마다 구구~ 하고 새들이 앉아 지저귀는 소리를 아이에게 들려주곤 합니다.
며칠 전, 황조롱이가 날아왔습니다. 분명 구구~ 소리가 나는데, 비둘기 소리와는 달라 조심스럽게 블라인드를 들쳐보니 황조롱이였습니다. 사실 뒷모습만 봐서 황조롱이였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다만 비둘기의 회색이 하닌 황갈색에, 몸집이 좀더 크고, 제가 아는 새들 이름 중에 뭔가 ‘황색’ 느낌이 있는 이름이 ‘황조롱이’뿐이라서, 아이에게 황조롱이라고 일러 주었지요. 우리는 그리하여 그날 “황조롱이”를 보았고, 그 새는 아이와 저의 수선한 호기심을 알아채고는 유려한 자태를 뽐내며 날아갔습니다. 황조롱이가 찾아와준 그 아침은, 즐거운 분주함 속에 우리 집 에어컨 실외기가 드디어 비둘기들뿐만이 아닌 새들의 공식적인 안식처로 인정받은 날이었습니다.
< 전사의 땅 >은 2019년 무용계 첫 미투 사건으로도 알려진 유명 안무가 위력성추행 사건의 법정 공방이 진행되면서 당시 법정과 무용실을 오가던 저와 권이은정, 그리고 연대인이었던 김하람이 힘을 모은 작품입니다. 작년 8월, 본 사건은 대법원에서 항소심 판결을 인정하며 마무리되었고, 이러한 흐름 속에서 최근 몇 년간 무용계를 포함한 문화예술계의 치열한 화두는 ‘어떻게 보다 안전하고 성평등한 창작환경을 구축할 것인가‘였습니다. 

그러한 과정 속에 탄생한 이 작품을 꽤 오랫동안 준비하여 드디어 작년 9월에 온라인 공연과 쇼케이스 형식으로 초연하게 되었는데요. 당시 제가 안무자로서 상상해 보았지만, 차마 실현시키지 못한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실은 올 해 아르코예술극장에서의 공연이 확정된 연 초까지도 실현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장면입니다. 바로 성폭력 피해생존자로서의 정체성을 내재한 대한민국 여성 시민들이 ’시민 무용수‘로서 무대 위에 함께 서는 것입니다.
< 전사의 땅 >의 안무적 핵심은 현실과 허구를 긴장감 있게 넘나들려고 노력한 장면 구성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군무 장면에서는 여성 무용수들이 장내로 울려 퍼지는 장엄한 북소리와 함께, 힘차게 동작을 내딛으며 폭력의 역사를 되물림하지 않으려는 다짐이자 선언과도 같은 움직임을 반복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어떤 테크닉도 필요 없이 체력이 좋으면 완주할 수 있는 안무로 구성하였죠. 8분 정도의 군무인데 나중에는 거의 체력장 수준으로 달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듯 가닿지 못한 어떤 이상향에 닿기 위해, 달리다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달려야하는 이 오래달리기의 여정을 삶에서 실제로 해온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습니다. 즉 프로 무용수로서 다져진 체력이 아니라 숱한 질곡에도 굴하지 않고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온 누군가가 있어, 이 장면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작품 속 진실이 그녀에게는 이미 삶을 통해 수십 번, 수백 번, 고귀한 힘으로 비축되어 8분여의 군무를 완주하는 장면을 꿈꿨습니다. 그러다가 ‘구구’를 만났습니다. 

‘구구’는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불리는 예명입니다. 아파트에 해마다 머물고 간 비둘기 친구들이 아닌, 조금 다른 체격과 다른 구구~ 소리를 내는 아름다운 황조롱이 같은 예술가입니다. 제가 안무가로서 꿈꿨던 지점, 즉 두터운 체험적 진실의 깊이를 내재한 '시민 무용수'의 움직임이 삶을 건 선언으로써 발언되고, 따라서 허구에 기반한 예술작품이 아닌 치열한 현실에 근거한 ‘예술적 진실의 추구’ 속에서 만난 답입니다. 이는 단지 < 전사의 땅 > 뿐 아니라 실은 본 공연의 세 작품 전체가 던지고자 하는 메시지입니다.  

구구가 어떻게 스스로 거기까지 이르렀는지는 모르지만, 8분여를 뛰고 나면 댄서들도 발이 풀려 입에 단내가 나는 군무를 그녀는 기어코 해냅니다. 물론 동작이나 박자는 다른 댄서들보다 투박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녀는 달립니다. 삶에서 얼마나 달렸길래 체력으로는 왠만하면 밀리지 않는 프로 무용수들보다 잘 달릴까-. 그녀의 몸짓이 뿜어내는 힘찬 선언은 저에게는 넋을 잃고 황조롱이를 바라보는 듯한 아름다움이고, 예술로 가닿고자 했던 궁극적 이상향이자 찬란한 너른 벌판입니다. 움직임이 삶의 진실을 담보한 ‘힘찬 선언’이 되는 순간입니다.

공연이 재연되면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번 공연에서는 어떤 부분이 보완이 되었는지 입니다. 
제가 드릴 답은 이것입니다. 저는 따뜻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어떤 ‘두터운 진실’을 만났고, 
그 진실의 몸짓이 선언이 되는 순간을 통해 너른 벌판을 펼치고 싶습니다.
 
‘신비로 들어가려는 겸허함이 없는 인간에게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다.’
 
구구는 제가 예술가로서 막연하게 꿈꾸던, 작품으로 가닿을 수 있는 어떤 실존적 진실에 근거한 궁극적 이상향, 즉 아직은 가닿지 못해 늘 목마른 신비-로 들어가는 작은 문입니다. 때문에 어느 한 순간도 쉽지 않았던 본 공연의 준비과정 속에서, 무너지다가도 다시 미래를 꿈꾸게 한 힘찬 지저귐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 찬란한 몸짓이 메이리치길- 바랍니다.

 
ps. 조금 서툴고 다를지라도, 그가 무대에 선 것만으로도 여름 호우처럼 우렁찬 박수가 밀려들어와 구구의 지난 슬픔을 만져주기를, 그리하여 그가 거쳐온 모든 삶의 계절들이 ‘가치있는 견뎌냄’이었음을- 그날 극장을 채울 우리 모두가 함께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무용수의 기억 1_권이은정

흔들리는 지하철 안, 점잖게 신문을 읽는 아저씨와 멀쩡하게 생긴 청년이 능숙한 손놀림으로 여성 승객을 성추행한다. 화가 난 여성이 이들을 응징하려 하자 도리어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대며 성질을 부린다. 관객석에서는 키득키득 웃음소리가 들린다. 천샘 안무가의 실감나는 아저씨 연기와 김하람 무용수의 천연덕스러운 표정 때문이리라. 하지만 웃는 사람 모두 마음 한켠으로 씁쓸함을 느꼈을 것이다. 연기가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

“사과를 안 하는 이유가 뭐예요. 사람을 차고?!” 지난 7월 말, 자정이 가까운 시간. 지하철에서 찍은 휴대폰 영상에서 내 목소리가 찢어져 나온다. 다른 승객들처럼 자리에 앉아 귀가하던 한 이십 대 여성이 자기 앞에 선 남성 노인에게서 아무 이유 없이 몇 차례나 발길질을 당하고 참다 참다 큰 소리로 항의하는 걸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함께 사과를 받아내려는 중이었다.

형형색색 멋들어지게 등산복을 차려입은 백발의 노인은 사과는커녕 한술 더 떠 우리에게 핸드폰 카메라를 들이댔다. 실소가 나왔다. 찍힌다면 본인이 찍혀야지, 뭘 잘했다고 피해자에게 카메라를 들이대? 그리고 찍으면 어쩔 건데? 그게 무슨 대단한 무기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그런데 놀라웠던 건 피해 여성의 반응이었다. 기겁하며 당장 지우라고 난리를 쳤다. 가해자는 더욱 기고만장해졌다. 불법 촬영한 사진이 삭제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었지만, 본인이 찍은 사진을 어디에 어떻게 올리는지도 모를 것 같은 이 고령의 남성에게, 정확히는 그의 카메라에, 속절없이 휘둘리고 있었다.

 

그 상황은 우리가 연습하고 있던 < 전사의 땅 >의 한 장면과 너무나 흡사했다. 내가 연기한 여성은 지하철에서 성추행을 당하고도 가해자가 휘두르는 카메라 공격에 대응을 포기하고 자리를 떠나버린다. 처음 연습할 때는 그 장면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작 사진을 찍는다고 못 덤빈단 말인가. 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보니 분하지만 맞는 얘기였다. 이것이 바로 이 사회가 키운 몰카 피해의 공포다.

노인이 예의를 지키라며(?) 계속 고집을 피우니 어떤 중년 남성이 와서 우리보고 그만하란다. 그러고는 “어르신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요새 세상이 그렇지 않으니 사진을 지우셔야 한다”라고 말하며 가해자를 어르고 달랜다. 참으로 눈물 나는 형제애였다. 한심한 두 인간이 합심하는 모습까지 공연 장면과 닮아있었다.

그만할지 말지는 우리가 결정한다며 물리치고, 계속 큰 소리로 노인의 잘못을 짚으며 신고를 받고 달려온 경찰에게 인계했다. 길거리 혹은 지하철에서 이유 없이 남성 행인에게 맞고 같이 싸우다 경찰서로 끌고 가는 일을 이십 대부터 숱하게 겪어왔지만, 분노는 늘 처음처럼 쉬이 가시지 않는다.


 

출·퇴근을 하거나 약속 장소로 이동하며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지하철이라는 공간은, 어떤 이에게는 일을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쿨쿨 자기 바쁜 곳이지만, 여성에게는 언제라도 일촉즉발의 전쟁터로 돌변할 수 있는 곳이다. 지하철에는 출신학교도, 경력도, 직함도 없고, 오직 (겉으로 추측할 수 있는) 성별과 나이만 있으며, 여자에게는 ‘그래도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일이 실제로 일어날 줄은 몰랐다며 도와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눈물을 흘리던 피해 여성과 이런 공연을 만들어줘서 정말 고맙다고 연신 인사하시던 관객들의 모습은 어딘가 닮아있었다. 여성 혐오는 온라인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공기처럼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 무뎌져 있을 뿐이다. “《82년생 김지영》은 SF 소설”이라는 한 남성의 인터넷 댓글이 화제가 되었던 것처럼, 내가 이십 년 가까이 직접 겪은 일을 누군가는 내가 특이해서 벌어진 특수한 일로 치부할 것이고, < 전사의 땅 >을 온몸으로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관객을 절대로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만큼 딛고 있는 땅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니 발을 구르고 점프를 하고 바닥을 자유로이 쓰는 무용수가 이 기울어진 땅을 모른 척하고 고고히 ‘예술’만 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 쉽지 않은 일이 번번이 벌어진다. 생면부지의 사람도 발로 차고 사진을 찍으며 위협을 하는 판에, 학생이나 무용수의 커리어를 쥐락펴락하는 교수나 안무가가 자신의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무슨 성찰을 하겠는가. 반성은 한다면서도 범죄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재판장에게 사과할지언정 피해자에게는 용서를 구하지 않는 가해자와, 무용계 위력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를 동정하고 감싸는 수많은 2차 가해자에게도 이 기울기는 체감되지 않는 것이다.

‌천샘 안무가의 제안으로 무용계 반성폭력 단체 ‘오롯 위드유’ 활동을 하며 가장 많이 했던 선언은 “가해자를 위한 무대는 없다”라는 것이다. 부담이나 강요로 다가갈까 봐 조심스러워 말도 꺼내지 못했지만, 피해생존자가 그토록 좋아하고 열심히 하던 춤을 언젠가는 다시 출 수 있기를 소망하는 마음이 사실 더 컸다. 혹시 생존자가 이 공연을 보게 된다면 그것을 계기로 무대에 다시 서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좋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며 이 공연을 준비했다. 성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이 분노를 뜀으로 표출하는 장면을 출 때는 당시의 트라우마를 다시 떠올리게 할까 봐 조심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공연을 마치고 생존자와 함께 부둥켜안고 울면서 진심이 통했다는 생각에 안도했고, 이렇게 맘 놓고 전사가 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쌈닭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되기 싫어도 전사가 될 수밖에 없도록 생겨 먹은 이 땅이 문제다. 하지만 이 기울기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 바로잡아야 하고 분명 바로잡을 수 있다. 그 싸움의 정당성을 알리고, 싸움의 기술을 전하고, 함께 익혀나가는 과정에 무용과 예술이 좀 더 자주 함께하기를 바란다.

감성스터디 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무용인들이 모인 인문학스터디 모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감성충만 지식저렴 예술가들을 위한 초경량 지식투척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구호 아래,실기에만 치중하는 국내 무용계에서 예술가들의 자연스러운 감수성을 회복하기 위해 매달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과 움직임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지요. 평균 세 시간에 이르는 열띤 스터디를 통해 습관처럼 쌓인 낡은 감정,
이유를 알 수 없는 해묵은 편견, 근거가 빈약한 관념의 굳은살들을 벗겨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쌓인 공연 결과물로는 시민들의 후원을 받아 제작되어
2015년 세월호 1주기에 상연한 [세월호 1주기 추모공연 : “팽목의 자장가”]와
문화예술계 미투운동에 동참하며 2020년 제작한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이 있습니다. 또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규탄하며 광화문에 설치된 광장극장 블랙텐트의 무용주간 [몸, 외치다!]에 초청받아 공연하였고,
시대의 아픔에 동참하는 다양한 퍼포먼스에 동참하면서 우리 시대의 예술가 시민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H I S T O R Y 
감성스터디 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    2021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 서울문화재단 & 포르쉐 코리아
‘몸의 인문학’ (창작역량강화사업 선정작) | 서울자치구문화재단연합회

·    2020

‘상여자의 착지술’ (성폭력 피해생존자를 위한 치유적 움직임 프로그램) 공동개발 | 서울예술치유허브
‘사법적 판단 너머 무용계 현장은 무엇을 할 것인가’ (예술현장연구모임) 참여 및 집행 | 서울문화재단
[‘아직 가닿지 못한 그곳, 찬란한 벌판’] 기획, 안무 및 출연 | 마포문화재단

·    2019

무용계 미투사건 류00 위력성폭력사건 방청연대 참여 및 기획 | 오롯 위드유
‘문화가 있는 날: 동동동 문화놀이터’ 선정단체 및 전국 투어 | 지역문화진흥원

·    2018

‘신나는 예술여행’ 선정단체 및 수도권 10회 투어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2018 살롱이브닝: “인간예찬”] 기획, 안무 및 공연 (최초예술지원사업창작발표형 선정작) | 서울문화재단

·    2017

[2018 살롱이브닝: “인간예찬”]을 위한 ‘아기와의 즉흥 워크숍’ (최초예술지원사업사전연구형 선정작)
예술가를 위한 치유적 움직임 워크샵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획 및 집행 |서교예술실험센터
[몸, 외치다!] 초청 공연 | 광장극장 블랙텐트 조직위원회

C O N T A C T

dancerslounge@daum.net
https://www.facebook.com/dancerslounge
http://blog.daum.net/dancerslounge
주 최 

감성스터디살롱 오후의 예술공방

주 관

By  윤슬

후 원

서울문화재단
포르쉐코리아
어반무브먼트살롱;댄서스라운지 

C R E D I T

음향감독 도명호 | 미술감독 김희수
조명감독 정채림 | 무대감독 김혜지
홍보디자인 마루 | 프로듀서 정혜미 

S T A F F_ L I G H T I N G 

천세현 장재영 정혁영 이한다
최우진 김원중 김용빈  

S T A F F _ S T A G E

이유성 심우섭 하재성 

S T A F F _ V I D E O

영상오퍼 미어
영상기록  투핸즈스튜디오
사진기록 혜영